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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로도토스 역사 (상)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읽게 된 것은 리디아왕 크로이소스와 현자 솔론의 고사를 접하게 된 때문이다. 당대 최고의 권력과 부귀영화를 누리던 크로이소스는 솔론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인지 물었다. 첫째에도 둘째에도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자 그는 분노했다. 솔론의 지혜로운 말을 들어보자. "지금 왕께서 물으신 것에 대해서는, 왕께서 훌륭하게 생애를 마치셨다는 것을 알때까지는 저로서는 대답해드릴 수 없습니다...한 사람이 죽기까지는, 그를 행운이 있는 사람이라고 부르더라도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보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신에 의해 잠깐 행복을 맛보다가 완전히 파멸해 버리는 인간도 상당하기 때문입니다."(40-41p) 행운이 거듭되었던 크로이소스는 솔론의 말이 와닿지 않았다. 그러나 후계자였던 아들이 창에 찔려죽고, 자신도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패하여 화형장에 오르게되자 솔론의 말이 생각나 그의 이름을 세번 외쳐불렀다고 한다. 여기까지가 내가 강연에서 들은 이야기였고, 책을 계속 읽다보니 이 외침을 들은 페르시아 왕 키루스는 급히 불을 끄게 하고 크로이소스로 하여금 무슨일인지 말하게 했다. 리디아의 수도를 약탈하고 있는 페르시아 군사들을 보며, 그는 행운이 자신이 아니라 키루스에게 옮겨갔음을 깨닫고 "저자들이 빼앗고 있는 것은 저의 도시도 저의 재물도 아닙니다. 저것은 어느 것도 제 것이 아닙니다. 저자들이 빼앗고 있는 것은 모두 왕의 것입니다."(78p) 키루스는 그의 말을 듣고 느낀 바가 있어 이후 크로이소스를 곁에 두고 그의 조언을 경청했을 뿐 아니라 그의 아들에게도 크로이소스를 잘 대접하도록 유언했으니 크로이소스는 행운을 잃은 대신 인생의 지혜를 얻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는전 9권으로 나뉘어 있는데 제 1권은 바로 리디아왕 크로이소스와 페르시아왕 키루스가 주인공이다. 헤로도토스는 비극작가 에우리피데스와 동시대인 기원전 400년대 사람이며, 『사기』를 쓴 사마천이 그랬듯이 십여년에 걸쳐 스키타이, 바빌론, 이집트, 이탈리아, 아프리카 등을 여행하며 구전으로 내려오는 전승을 직접 확인하고자 했고, 그곳에서 본 지리적, 민속학적 특색까지 기록으로 남겼다. 그 덕분에 그리스 로마 신화속의 인물인줄 알았던 헤라클레스의 자손들이 리디아의 왕가였고, 이들에게서 왕권을 빼앗은 메름나드 가 기게스의 후손이 크로이소스왕인 것을 알게 되었으니 신화속의 사건들이 실제로 고대 역사의 한 부분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전율이 느껴진다. 제 2권은 이집트의 풍속사를 지루하게 늘어놓는데 흥미로운 것은 그리스 신화속의 신들이 이름만 다를 뿐 이집트에서 유래되었으며, 트로이 멸망의 원인이 되었던 헬레네와 스파르타의 보물들이 표류하다 이집트에 억류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트로이왕가는 망국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헬레네를 그리스에 반환하고자해도 반환할 수 없었다. 그리스 군도 전쟁에서 승리했으나 그녀를 찾지못해 이집트로 갔었으며 호메로스도 이를 알았으나 서사시에 적합하지 않아 빼놓았다는 것이 헤로도토스의 주장이다. 제 3권에서는 페르시아 왕 키루스의 아들인 캄비네스가 이집트를 정복했으나 이어지는 전장에서 죽게되자, 혈육이 없어 권력이 다레이오스(다리우스)에게 넘어가고 다레이오스가 바빌론을 정복하는 이야기가 박진감 넘치게 그려진다. 이 와중에 사모스의 왕 폴리크라테스가 나오는데 그의 행운이 거듭되자 이집트 왕 아마시스가 충고한다. "만사가 모두 행운을 입어 잘 풀리는 것보다는 오히려 성공이 있으면 실패도 있는 식으로 행운과 불운을 번갈아 맛보면서 일생을 마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무슨 일에서도 행운을 맛보는 자로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지 않는 예를 소생은 일찍이 들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293p) 라고 말하며 가장 귀중한 것을 스스로 버려서라도 불운해지라고 충고한다. 계속되는 행운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고 이는 신의 질투를 불러 불행한 최후를 맞게 되므로 행운이 왔을때 겸손해지라는 것이헤로도토스가 생각하는 행복의 비결이다. 제 4권에서는 다레이오스의 스키타이 원정이 그려지며, 헤라클레스가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지브롤터 근처에 왔다가 상체는 여성이고 하체는 뱀인 사녀와의 사이에서 낳은 세 아들들의 자손들이 스키타이의 역대 왕이 되었다는 전승을 소개한다.
(詩)의 단계를 극복하고 역사 서술의 장을 연 역사는 종래의 산문 작가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대규모적 서술 계획에 입각하여 헤로도토스 특유의 역사 구상으로 씌어진 인류 최초의 역사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