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슈킨(뿌쉬낀)을 둘러싼 온갖 찬사의 말들이 있지만, 그에 대해서는 한 마디로 이야기꾼 , 좀더 멋있는 말로 하면 산문정신 이라고 간결하게 정의하고 싶다. 그는 물론 운문 작품도 남겼다. 그러나 푸슈킨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만든 것은 홀랑 빠져들도록 뛰어난 이야기 솜씨다.
초등학교 3학년 생일선물로 계림출판사의 <대위의 딸>을 받은 것이 푸슈킨과의 첫 만남이었다. 그전까지 접했던 다른 어린이용 명작 들과는 다른, 무언가 낯설고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청소년기에는 삼중당 문고가 크게 유행했었다. 손바닥 만한 <대위의 딸>을 탐닉하듯 읽어낸 다음, 그 뒤에 수록된 벨낀 이야기를 발견했다. 개성 넘치는 5편의 이야기들은 저마다 다른 매력이 있었다.
여전히 예전 삼중당 문고 번역의 제목이던 그 일발 이 더 익숙하게 여겨지는 <발사>, 우연이 필연으로 되어버리는 반전을 선사하는 <눈보라>,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 다는 건 어디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게 한 <장의사>, 여주인공이 불행해질까봐 마음을 조였지만 그런대로 안도의 한숨을 쉬게 한 <역참지기>, 벨킨 이야기 중에서 가장 경쾌하고 발랄한 <귀족 아가씨-농사꾼 처녀>에 이르기까지 벨킨을 가장한 푸슈킨의 이야기는 마음을 끌어당긴다.
처음 읽었던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 다섯 편 가운데 <역참지기>의 주인공 두냐가 세 아이들과 삽살개를 데리고 아버지 묘를 찾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느꼈다. 까람진의 <가련한 리자>가 안겼던 슬픔과 안타까움과는 달랐다. 그럼에도 딸을 잃고 절망 속에서 생을 마친 삼손 브린에게 깊은 연민을 품게 된다. <역참지기>는 절반의 행복한 결말 로서, 그 짧은 이야기 안에서 끝까지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스페이드 여왕>은 <벨킨 이야기>보다는 덜 재미있었다. 그렇지만 게르만이 일관된 심지 없이 방황하다가 끝내 파멸에 이르는 이야기를 그토록 극적으로 그려내어 인간의 어리석음과 모자람을 반추할 수 있다.
이야기의 전개 방식에서 <벨킨 이야기>는 시작부터 모든 단편의 앞머리에 에피그램과 같은 성격의 짤막한 문구들을 제시하였다. 이런 방식은 <대위의 딸>에서도 나오기는 한다. <벨킨 이야기>에서 무엇보다 인상깊었던 문두의 구절은 "고 이반 페트로비치 벨킨의 이야기"라는 제목 바로 다음의 이 내용이다.
"그럼요, 이보세요, 얘는 어렸을 적부터 이야기를 정말 좋아했어요."
이야기라는 문학의 형식은 노래가 그러하듯 인간이 살아나가는 한 끝나지 않고 지속될 것이다.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이야기를 수십 년 후에도 변함없이 좋아할 수 있어서, 더 유려한 번역과 아름다운 장정으로 만날 수 있어서 기뻤다.
러시아 만문 소설의 정점에 있다고 평가받는 작품으로, 시 뿐 아니라 소설, 드라마 등 모든 장르에서 러시아 근대문학의 토대를 마련한 작가로 평가받는 푸슈킨의 작품. 당대 러시아 현실의 한복판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사랑과 증오, 탐욕, 광기를 탁월한 이야기 솜씨로 펼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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