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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부엌

퇴근길에 주린 배를 안고 버스에서 내려서 집으로 오는 길에 자주 슈퍼마켓에 간다. 그날 저녁으로 해 먹을 식재료를 포함하여 이것저것 당장 먹지 않을 것도 함께 주섬주섬 산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막 사온 재료들을 활용해서 음식을 해 먹고 남은 재료들은 바로 냉장고로 직행. 그 후 몇몇 식재료들은 상할 때 까지 다시 들여다보지도 않고 결국은 바로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 자취를 시작한 후에는 항상 이런 패턴의 삶이 반복이다. 그래서 차라리 배달 음식을 먹거나 외식을 자주 하지만 요즘에는 위생 때문에 조금 피곤해도 내가 직접 해 먹는게 낫다는 판단으로 매일 매일 요리를 한다.  이런 내가 한 번도 냉장고에 대해서 의심해 본적이 없다. 되려 냉장고는 인류가 살아온 이래 가장 획기적인 발명품들 중의 하나라고 여겨왔다. 학생 때 소풍 갔던 경주에서 봤던 석빙고 또한 냉장고의 원시적인 상태가 아니던가? 무해백익(?)하다고만 여겨온 발명품 중의 하나인 냉장고에 대해서 이 책을 읽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사실 책의 저자를 이전에 SBS스페셜에서 본 적이 있다. 짧은 분량으로 책에 소개된 여러 음식 보관법을 보았었다. 획기적이라고 여겼었다. 그 뿐이었고, 그 후에도 나는 무조건 음식은 냉장고에 보관해야 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살아오고 있었다. 냉장고가 발명되기 전의 보관법은 불가피한 보관법이기 때문에 최대한 음식을 빨리 상하지 않게 할 뿐, 냉장고에서의 보관보다는 빨리 상할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책을 덮고 난 후에도 아직 이 부분에 대한 정답은 알 수 없다.  몇몇 채소의 경우는 오히려 냉장고에서의 보관이 신선도를 떨어뜨린다고 한다. 몰랐던 사실이다. 가장 놀랐던 것은 바로 계란 이다. 생각해보면 마트에서 계란을 판매할 때 냉장고가 아닌 실온에 보관하면서 판매한다. 그런데 누구나 집에 가져온 이후에는 아무 생각 없이 냉장고에 보관한다.  냉장고에 음식을 보관하기 전까지 인류가 어떤 방식으로 음식을 오랫동안 먹기 위해서 노력했는지 여러 발효 음식을 보며 알 수 있다. 세계 어느 곳을 가더라도 이와 비슷한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바로 여기서 인류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지금은 이런 지혜를 담은 역사가 냉장고라는 문명의 결과로 대체되어 버렸다. 잠시나마 이 책을 통해서 지금까지는 생각해 볼 수 없었던 음식 보관의 지혜와 역사, 여러 나라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들여다 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

냉장고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줄 책! 인류의 오래된 지혜를 복원하기 위한 대담하고도 독창적인 부엌 프로젝트! 전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디자이너 류지현의 제안! Save food from the fridge(냉장고로부터 음식을 구해 내자)! 세계 최초의 냉장고는 1920년대에 등장했다. 100여 년 동안 우리는 냉장고를 ‘최고의 발명품’으로 치켜세웠다. 그러나 냉장고 없던 시간, 냉장고 없이 살았던 삶에 대해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이 책은 시간적으로 보면 인류에게 더 익숙할 법한 냉장고 없는 삶, 인류 역사와 함께해 온 음식 저장 문화에 주목함으로써 역설적으로 냉장고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유럽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어느 날 냉장고가 과연 식재료를 가장 건강하게 보관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까? 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여기서 냉장고로부터 음식을 구해 내자(Save food from the fridge) 프로젝트가 시작되었고, 지식의 선반(knowledge shelves)이 탄생했다. 저자는 냉장고가 아닌 자연의 힘을 이용해 음식을 저장하는 삶과 문화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경험하기 위해 이탈리아 및 네덜란드 농가 지역을 시작으로, 3년여 동안 세계 곳곳의 부엌과 텃밭, 크고 작은 농장과 공동체를 찾아다녔다. 이 책은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자연의 방식으로 꾸려가는 부엌에 관한 열정적이고 감동적인 기록이다. 문제가 생기면 약간의 불편도 견디지 못하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해결하려는 현대인에게, 주어진 환경 안에서 관찰과 경험을 통해 축적된 ‘오래된 지혜’가 그 어떤 신기술보다도 진보적이고 비용도 들지 않으며 풍요로운 삶을 만든다는 것을 보여준다.

프롤로그
냉장고 문이 열리는 순간 우리의 앎은 닫힌다

1 냉장고가 없던 시절
냉장고가 없던 시간이 인류에게 더 익숙하다|암스테르담, 건물 창가에 매달린 비닐봉지|파리, 가르드 망제|토리노, 필리베르토 광장 눈 저장고|니가타 현, 산비탈의 눈 저장고|인도, 테라코타|‘우리’의 문제는 ‘그들’의 문제가 된다

2 우리에게 냉장고는 무엇일까
새로운 조왕신의 등장|지나친 믿음|풍요와 기근, 그 사이에서

3 냉장고 없는 부엌을 찾아서
- 쉬지 않는 손: 이탈리아 루실리에, 렌자의 식탁
- 달콤 쌉쌀한 10월의 와인: 이탈리아 바르바레스코, 오레스테의 집
- 맛있는 태양: 베네수엘라 산타 엘레나, 안헬라의 정원
- 감자 밟는 아침: 티티카카 호수 안 아만타니 섬, 페르시의 낙원
- 세계에서 가장 끝내주는 맛: 쿠바, 페페의 저장음식 연구소
- 도랑을 이용한 천연 냉장고: 이탈리아 카나베제, 데필피 가족의 농장
- 하얀 벌레와 함께 먹는 치즈: 이탈리아 남부 칼치아노, 밈마의 고향집
- 하룻밤의 잊지 못할 환대: 안데스 고산 지대 락치, 막시밀리아나의 부엌

4 냉장고가 없었기에 누리는 맛
겨울을 나기 위한 저장 기술|바람과 햇살로 말린 황태|깊은 바다 맛 과메기|극장의 추억 마른오징어, 진한 국물의 일등 공신 마른 멸치|응축된 시간의 맛, 가쓰오부시|말려 먹는 이탈리아 빵들|유럽 곳곳의 말린 대구|사람이 준비하고 자연이 완성하는 양념, 젓갈|저장 음식의 조력자, 소금|지속 가능한 저장법, 발효

5 냉장고와 거리 두기
남은 음식들의 새로운 변신|부엌 풍경의 변화

[부록] 냉장고로부터 식재료를 구하라!
함께 보관하는 감자와 사과|모래 바구니로 살려 내는 채소들|물을 이용해 보관하는 채소들 |물을 이용해 보관하는 의외의 식재료|끓여서 오래오래|장식과 보관을 동시에|주렁주렁 매달고, 심고 말리고|배 위에서도 거뜬한 달걀|쓰다 남은 채소들

에필로그
‘냉장고의 부엌’에서 ‘사람의 부엌’으로